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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백련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다산초당에 왔어요

강진은 한양에서 멀고

워낙에 한적한 동네였기에

조선시대 때 유배를 당해서

이 지역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대표적 인사가 조선이 낳은 천재

다산 정약용입니다

그가 유배 생활 중에

만덕산에 지었던

다산초당 가는 길은

꽤 험난했는데요,

다산 정약용이

조선 실학을 꽃피운 길을

함께 따라와 보세요~


DAY 1

강진여행

설성식당 - 백련사 - 다산초당


다산초당

사적 107호

📍 주소: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 영업시간: 09:00~18:00

📌 관람 요금: X 📌 휴무일: X

📞전화번호: 061-430-3911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강진으로 귀양을 와서

18년 유배기간 중

마지막 11년간

생활하던 곳이에요

다산초당에서 다산 정약용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500여 권의 책을 저술했어요


다산초당

주차

다산초당을 방문할 경우

자가용이 아니면 가기가 좀 힘들어요

 

주차장이 따로 지정되어

있진 않았는데

이정표 뒤쪽으로

흙바닥 위에 주차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다산초당

가는 길

입구부터 다산초당까지

300m 정도를 걸어야 해요

거리상으론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경사가 엄청 가파른 길로

20분 정도 쉼 없이 올라가야 합니다

마음의 각오를 하고

올라갑니다

 

백련사와 마찬가지로

여름의 숲은 모기와 날벌레가

매우 많았어요

여름에 오시는 분들은

모기 기피제는 필수!

부채, 손수건, 양산 등

벌레를 피할 수 있는

장비를 꼭 하고 오시길 바랄게요

아무 방비 없이

올라간 저는

여기서 모기 총 6방을

물리게 됩니다

 

숲이 우거져 여름에도

충분한 그늘을 만들어 주지만

습해서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어요

어느정도 걷다 보니

돌계단이 나옵니다...!

다리 근육이 불끈불끈 올라오네요

다산 정약용이 걸었을

유배로의 힘겨운 발걸음을

생각하니 한결 나았어요

20대인 저한테도 힘든데

노약자나 장애인은 올라오기가

어려울 거 같아요


다산초당

건물

험난한 길을 지나니

다산초당이 눈에 들어옵니다

건물은 수수했습니다

다산초당은

원래 목조 초가였으나

1936년에 노후로 붕괴하여

없어졌어요

1957년 강진 다산유적보존회에서

목조 와가로 재건했답니다

서암

다산 선생이 기거였던 동암,

제자들이 지냈던 서암을 비롯하여

 

여전히 다산선생의

자취를 느낄 수 있어요

실제로는 초가지붕이었으나

관리상의 문제와 보존에 어려움 때문에

기와지붕을 얹은 듯합니다

다산초당 건물에는

안경 쓴 다산 선생의

어진이 있어요

현판에 판각된 '다산초당'이란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을 집자해서

모각한 것이에요


다산초당

다산 선생의 유배지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이

강진에 유배해 온 때는

1801년(순조1년) 겨울이었어요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순조가 즉위하면서

곧바로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무려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겪었어요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오자

강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죄인 취급하여 멀리하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 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외가 해남 윤씨의 도움으로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겼어요

 

유적의 중심이 되는 다산(茶山)은

초당이 있는 뒷산을 지칭하며

차나무가 많이 자생한 곳이에요

다산은 강진의 제자 18명과

다회(茶會)인 '다신계'를 만들었어요

 

약천

여기는 차를 끓이기 위해

물을 뜨던 샘물인 약천이에요

다산은 솔방울을 태워

차를 달였어요

초당 위쪽 길을 따라 올라가면

 

동암

다산 선생이 기거였던

동암이 나옵니다

다산동암 현판은

다산이 쓴 것이라 하네요

천일각

여기는 다산초당의

정자 천일각입니다

초당 근처에는

백련사와 이어지는

조그만 오솔길이 있어요

다산 유배길

쭉 이어진 길의 끝에서는

동백군락지로 이름난 백련사를

만나볼 수 있어요

1818년 9월까지 10여 년 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하였어요

방대한 실학체계의 대부분을 구상하고

집필한 곳으로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대표저서로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

경세유표(經世遺表) 등

500여 권이 있습니다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어요

올라온 길이 아까워

더 머물고 싶었지만

모기가 어찌나 많은지

쫒겨 나왔습니다

강진의 대표 문화재임에도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고

있는 느낌이라 아쉬웠어요

이 아쉬움을 달래러

아래에 있는 다산전시관에

잠시 들러 정약용의 행적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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